<이수경 개인전 : 얼굴들>

작가와 기획자의 글
(이 글은 작가와 기획자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가 바탕이 되었다. 먼저 작가가 작업 노트의 형식으로 글을 작성하였다. 기획자는 자가의 글 사이에 개입하여 때로는 응답으로, 때로는 다른 맥락에서 글을 작성하였다.)

이수경, 장혜진, 박재용 (workonwork.org)


삶이라는 게 어떤 커다란 꿈을 향해 저 멀리 나아가거나, 마음 속에 원대한 소망을 품은 채 한발 한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자꾸 자꾸 벽 앞에서 주장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한다. 오래 준비한 강력하고 깊은 한마디를 던지고 싶지만 그것을 포기/보류하고 대신에 즉각 즉각 말해보려는 것이다.


우리는 (140자의 글자수 제한을 넘기지 않고) 누군가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재치있으나 강력하고 그러므로 결정적인 한 마디를 생각해내려 애쓴다. 이것은 글이라기 보다 오히려 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말하기가 두려운 순간은 늘어만 간다. 사건의 속도는 나의 생각보다, 말보다 빠르다. 이와 같은 순간, 이수경은 강력한 말 한 마디를 던지기보다 즉각적인 말하기를 시도하려는 듯 보인다.


작업은 계획을 가지고 시작되기 보다는 생각에서 손으로 직관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다보면 어떤 형태나 신체는 대개 생략되거나 간단하게 표현되곤 한다. 직관은 빠르고 가벼운 표현에 적합하다.


이수경은 간편하고 일상적인 도구로 표현이 가능한 드로잉 작업을 한다. 이수경의 드로잉은 사건의 순간이나 감상을 기록하기 위한 스케치가 아니고, 작업의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과정도 아니다. 그렇다면 개념적인 드로잉 작업일까? 개념적 드로잉으로 잘 알려진 윗세대 작가들과 일련의 젊은 작가들이 하고 있는 간결한 드로잉, 오브제,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텍스트로 조합된 형식의 작업도 아니다.

직관적으로 그려진 이수경의 드로잉에서 빠르고 가볍게 표현되는 얼굴들은 얼핏 서로 닮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가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표현 방식에 있어 일관성을 가진 등장 인물이 생겨날 법도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80여점의 작업에서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을 찾을 수 없다. 작업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렇게 분절된 이야기들이 모여 마침내 말 넘쳐나는 전시를 만들어낸다.


때로 드로잉들은 일러스트/디자인/만화/미술의 경계에 위치하는 것 같다. 설명하기 애매한 등장인물들의 표정은 상황에 몰입되지 않고 공간 속에서 여기저기 딴 곳을 바라본다. 눈앞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몰입하는 대신 시시함을 느끼면서 그들은 우물쭈물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물쭈물의 표정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것에 능숙해진지 오래되었고, 그래서 우물쭈물에도 다양한 표정과 자세가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수경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동물 혹은 사물은 어딘가 비어있는 불완전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무언가가 생략된 모습은 생략되지 않은 요소를 오히려 도드라지게 한다. 현대 미술의 범주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이수경은 스스로의 작업이 늘 어딘가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만 이수경은 대상이 미화되거나 세련화되고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을 지양하여 관람자의 시선이 보다 섬세하게 반응할 것을 요청한다.


어떤 생각을 발언하고 그것을 듣게 하는 것보다는 보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 이것들은 말하는 드로잉이 아니라 우물대는 드로잉, 입을 꾹 다문 드로잉이다.


우물대거나 입을 꾹 다문 듯 보이는 이수경의 작업은 전시 안에서 역설적으로 수많은 모호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작업의 일부와 함께 최근 시작된 일련의 오브제 작업을 선보이는 이수경의 첫 번째 개인전은 거대한 명제를 써내려가기보다, 지금- 여기의 명제들 틈에서 작고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발화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두에게 입장과 위치를 표명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어느 시기를 앞둔 지금, 입을 꾹 다문 드로잉이 말하는 것에도 귀기울여보자.




in English

Yaa 이수경 (March, 2012, 월간미술)
우물쭈물한 나의 발견

이슬비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전개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고 일방적으로 흘러간다. 이 같은 상황에서 꼭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발언해야 하는 것일까?” 작가 이수경의 작업은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린 〈얼굴들전〉(2.11~3.4)에서 작가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해온 드로잉 작업과 최근 시작한 오브제 작업을 선보였다. 가볍고 직관적인 드로잉은 세상을 향한 태도에 대한 고민과 순간 순간의 느낌을 손이 가는 대로 기록한 것이다.

80여 점의 드로잉에 등장하는 얼굴들은 서로 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른 표정과 눈빛을 머금고 있다. 실제 인물을 그린 것도,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한 것도 아니다. 사람, 동물, 괴물 등이 섞여있지만 그렇다고 환상의 세계도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법한 상황이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눈빛들은 주어진 상황에 몰입하지 않고 여기 저기 딴 곳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우물쭈물한 얼굴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고 말한다. 유난히 큰 눈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그렇다고 일관성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여학생의 낙서 같은 끼적거림에 가깝다. 그녀의 드로잉은 낙서 같은 요소가 미술 영역에서 배제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

이수경은 〈얼굴들〉 드로잉 이전에 다문화, 왕따, 돈 등 특정한 주제아래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작가는 그 문제에 깊숙이 들어가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늘 주변에서 서성이며 머뭇거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해왔다. 한 개인이 주변 상황에 압도되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력해질 때 드러나는 우물쭈물함은 사실 작가 혼자만의 태도는 아니다. “현실은 모든 이에게 뚜렷한 입장을 표명해라고 요구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우물쭈물하기보다는 강한 발언에 대한 리스크를 두려워합니다. 그런 상황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딴 짓을 하는 것이기도 하죠.” 사실 어물쩡하고 의미 없는 잉여 짓은 기존의 관점에서는 쓸모 없는 ‘공백’이지만 양자 택일, 무한 경쟁, 계산된 미래를 강요하는 세상에 질식된 사람들에게는 ‘숨 쉴 공간’이기도 하다. “잉여 짓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것에도 치열함이 있고 수준 높은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오브제 작업도 뚜렷한 목적에서 시작한 바느질이 아니라 특별한 용도 없이 불특정한 형태를 만드는 것에 몰입해 나온 결과물이다.

이수경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밝힌다. 하지만 “캐릭터로 정해지는 것, 섹슈얼하고 폭력적인 것을 귀엽게 그린 것, 세련되어 보이거나 일부러 못 그린 그림과는 구분되고 싶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드로잉과 오브제 작업에 계속 집중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병행할 예정입니다. ‘묘지 관리인’이라는 제목으로 무덤이나 봉분의 형태에 관심있는 다른 작가와 현장을 답사하고 새로운 묘지의 형태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Review (March, 2012, Art In Culture)

김영글

이수경의 드로잉은 얼핏 보면 귀엽다. 첫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드로잉 연작도 일상에서 마주친 인물들을 위트를 섞어 쓱쓱 그려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첫인상과는 꽤 다르다. 대부분 신체나 얼굴의 일부가 생략되어 있는데, 그 생략은 생략된 부분을 상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생략이 아니다. 생략된 부분은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이 불완전한 얼굴들의 행렬을 보면서 얻게 되는 감정은 조각난 퍼즐을 끼워맞추는 즐거움보다는 군데군데 철자가 빠져 해독 불가능해진 단어들을 접했을 때 가질 법한 낯설음과 호기심에 가깝다.

몇 가지의 재료로 간단하게 그려진 드로잉을 두고 해독 불가능 상태라고까지 말하게 되는 데에는 생략된 부분들보다 그려진 부분들의 역할이 크다. 각각의 그림들은 분명 어떤 상황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에피소드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드로잉 속 얼굴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을 띠고 있는데 그 표정의 이름을 하나하나 콕 집어 말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얼굴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는 순진한 믿음에 기대지 않더라도 우리는 얼굴을 그린 그림에서 일말의 감정을 읽으려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수경의 얼굴들은 아무 것도 명확하게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표현의 차원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보이는 얼굴마저도, 그 표정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는 심드렁해 보인다.

하지만 얼굴들의 미묘한 반복과 차이가 80여점의 시리즈로 한 눈에 조망될 때, 이 심드렁한 드로잉에도 한 가지 기본 원칙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불완전함 자체에 대한 천착이다. 불완전한 요소들 간의 중첩과 결합은 매체적으로도 이수경 드로잉의 애매모호한 성격을 배가시킨다. 만화처럼 과장된 표현이 눈동자나 이빨에서 보이지만 만화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온전한 성격이 부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체 특징이나 구체적 장신구의 연출이 엿보이지만 일러스트나 캐리커쳐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냥 휘갈긴 낙서도 아니면서, 그 모든 요소들을 다 조금씩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징이 드로잉 연작에 희미하게 편재해 있다면 이번 전시의 한 파트를 이루고 있는 몇 점의 오브제에서는 보다 집요하게 응축되어 있는 듯하다. 솜, 화분받침대, 다 쓴 두루말이 휴지 심처럼 '시시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기묘한 생김새의 오브제. 이들은 망가진 인형의 얼굴 같기도 하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인테리어 용품의 일부분 같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이 얼굴들의 불완전함이 비로소 각각의 얼굴을 완성시키고 있다. 작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마다 '입을 꾹 다문' 채로 말이다.